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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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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7-01-23 12:03 조회4,34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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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이 조금씩 밀려와
발 끝에 채입니다.
국수가닥만하게 굵어진 밤비를
외등이 파뿌리처럼
하얗게 벗기고 있습니다.

날씨가 끈적 후덥지근하죠?
또 비가 옵니다. 지긋지긋.
분채기법으로 쏟아지는 빗줄기.
비례를 무시한 사선을 그으며
털썩 주저앉은 풀잎에 꽂히는 박음소리.
거북의 잔등에도 못질하듯 내립니다.
애호박의 두개골을 패는 장대비를
모든 몸가진 것들이 숙명처럼 감수합니다.

빗속에 갇혀버린 자들이 잿빛 화석이 되어
끝내 실체에 다가서지 못하는 유령처럼
깊은 영탄으로 또 이 밤을
이 밤보다 속내 깊은 밤을
비는 빈객처럼 오고.

어느 기슭을 스쳐가던 바람고리가
문살에 걸려 흔들리는 창가에 서면
하느님도 외로워서 눈물을 흘리십니다.
비가 온 세상을 물걸레처럼 질펀하게 적시는 밤에
누군가의 작고 따뜻한 손길을 어깨에 느끼고 싶습니다.

그러나 내겐 고독도 은총입니다.
서로의 죽지에 부리를 파묻고
따뜻한 체온을 나누어 가지는 새들을 위해
먹장 같은 한을 거두어들이며
괜찮은 글 한 편 쓰고 싶은 밤입니다.
눈썹달도 버린 밤입니다.
하늘이 아파 눈물이 납니다.
지금 나는 말없이 아픕니다.

무언지 모를 그리움만
턱없이 키가 자라고
접시꽃이 가혹한 슬픔을 향하여
벌거벗은 울음빛으로 피었습니다.
벙어리시늉으로 피어 있습니다.

이렇게 비가 내리면
마음이 무겁습니다. 이미
내 고독이나 그리움은 사치입니다.
떠나올 님들이 걱정 입니다.
즐거워야 할 여행길에 행여 장애가 되지 않을까
염려됩니다.
그러나
님들, 비도 낭만을 보태준다 여기세요.
자연의 섭리를 즐기십시오.
우리도 자연의 한 부분입니다.
비가 오면
나는
떠나올 님들 걱정에 밤잠을 설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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