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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처럼, 나무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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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7-01-23 12:07 조회5,09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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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내립니다.
나무도 하늘에서 수직으로 내려꽂히듯
저 비를 다 맞고 오기로 섰습니다.
먹장구름에 저토록 가슴이 꽉 막혀오면
하늘은 빗방울로 서슴없이 길을 떠나오듯
나도 비의 등줄기를 타고
두 손만으론 어림없는 일들을 제쳐 둔 채
이 세상 가장 나직히 내려
민들레 홀씨의 겨울잠에 이불이 되어주고 싶고
입덧으로 가슴 앓는 흙의 목젖을 축여도 주고싶습니다.
비가 이렇게 내리는 날은
그리움 아리도록 손톱에 동여매고
섬돌 위에서부터 첫걸음으로 가보고 싶습니다.
난 아직 나비의 날개 끝에도 가보지 못했습니다.
새들의 울음소리 끝의 마침표에도 가보지 못했습니다.
이도저도 가지 못할 바엔 차라리
찢어진 가슴을 더 찢어가는 양배추의 속까지나마
이 비에 끌려가고 싶습니다.

비가 내립니다.
질정없이 내리는 찬비에 온 몸을 빠뜨리고
나무들도 사시나무처럼 떨고 있습니다.
무방비로 저 비를 노맞고 섯는 나무는
존재의 고독을, 생존의 위기를 견디어내면서
오히려 고독과 위기를 드높이 키우며
생존의 위기를 이겨냅니다.
나무는 긴 세월을 순리대로 살아가면서
참아내며, 이겨내며, 견디어내며
제 자리 지키며 솟아 있을 뿐 울진 않았습니다.
심약한 바람이 대신 울어 준 겁니다.
제 천명 다하면 쓰러지는 나무는
마음 안에 있는 가장 가까운 이웃입니다.
그 이웃인 나무와 마음 사이에 님들이 계시기에
한겹 창호지로도 족히 기습폭우를 비껴갈수 있겠기에
깊어가는 밤, 깊은 감사 드립니다.

언제나 비처럼 낮은곳으로 흐르겠습니다.
언제나 나무처럼 순응하며 살겠습니다.
지난 여름의 그 뜨거운 응원에 힘내어
삼월의 비처럼
십일월의 나무처럼
그렇게 살겠습니다.
카올린을 다녀가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고마운 마음 올립니다.
날마다 한가위만 같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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