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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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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7-01-23 12:05 조회5,03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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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이 힘들다 싶으면 가을이 오고,
가을이 겨웁다 싶더니 숨돌릴 틈도 없이 다가온 십일월.
이룬 것은 없고 잃은 것은 더 많은데
어쩌자고 하루도 낯익히지 못하고
세월은 화살촉을 탄 듯합니까.
회색이 재해석되기 시작하는 겨울.
갈색 일변도의 산야도 지금은 겨울빛이 꼬치꼬치 스몄습니다.

바람이 불면 어깨로 박을 세어가는 나무의 눈부신 떨림.
가을이면 존재의 떨림을 섬세하고 절묘하게 표착해낸
은행나무 한 주를 봅니다.
끓어오르는 통곡처럼, 폐부를 찌르는 진한 계면조의 성음처럼,
오래 참았던 숨을 내쉬며 상청으로 치올리는 노란 소리결의 절대음감이
초록을 추월하여, 혼몽한 생금빛으로 착색되어 있습니다.

팍팍한 현실을 위무하는 주문처럼, 색의 독백처럼,
마음귀에 스며들도록 단걸음에 치닫는 베르텔의 취향이 저런 주조색일까요.
각고면려 글을 쓰느라 물켜진 눈가를 훔쳤던 플로베르의 손수건도 저런 노랑일까요.
노랑봉투에 노벨상금 전부를 넣어 버전성당에 기부한 헤밍웨이의 들키고 싶은 마음도
어쩜 저런 노랑이 아니었을까요.
투명한 초가을의 섬려한 햇살 아래 눈부신 아름다움.
눈부심이란 진정 눈물의 다른 이름으로 맺힌 은행알은 아닐지
아마 녹색이 소스라치면 저렇게 아리한 감동으로 목구멍을 막겠지요.

촌촌면면 그 어디서든 제풀에 걸음을 멈추고 선 은행나무를 봅니다.
은행목은 음표의 표기가 불가능한 색의 소리꾼,
효소의 활성도를 조절하는 색의 시인,
통한을 날려버린 색채의 천재였습니다.
천재란 에너지 총량이 여느 사람보다 월등이 많아서가 아니고
주어진 에너지를 한 곳에 몰아쓰는 사람이듯,
휴면기라는 절대가치를 향하여
한 해의 마침표를 노랑으로 솔방 쏟아내는 웅지가 가히 천재적이었습니다.

어떤 이기적 계산도 삿된 망설임도 없이,
마침표로 잎을 다 쏟아낸 은행목들,
심심투성이인 잔가지들을 날 선 칼처럼 사방으로 뻗은 채
단지 쉼표만 취하는 이 땅의 엄첨지.

제 생애 홑이불 없이도 이 겨울 "추위쯤이야"로 자신에 차 있는 그 은행나무.
전 은행나무를 영원히 사랑하렵니다.
설사 이것이 다른이의 판단이나 희망과는 어긋나는 일일지라도
단 한 번 뿐이라는 간절함으로 껴안고 싶은 진중함은
어중띈 푸념이 아닙니다.

"엄동에 몸조심하거라."
돌아서 다시 보았습니다.
은행나무의 건강한 다리가 햇빛을 받아 번들거렸습니다.
오히려 저가 내게 위안을 보내듯...... .
그러나, 나무는 지금, 춥겠습니다.
은행지기 내 작은 가슴이 남.몰.래 패.입.니.다.

아직도 잎을 달고 있는 은행나무가 잊혀지지 않아 글을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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